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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SIGHTS

미래세대를 위한 평화상, 선학평화상재단입니다.

"아프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무도 우리한테 신경쓰지 않아요…."

 "우리는 이제 역사 속에서 죽어가겠죠"


-탈레반 집권으로 절망에 빠진 아프간 소녀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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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과연 21세기의 현실인가?’ 필사적으로 항공기를 향해 뛰어가는 사람들, 어떻게든 항공기에 타기 위해 탑승 계단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사람들, 항공기 바퀴에 매달린 채 이륙했다가 공중에서 추락사하는 사람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하자 수도 카불 공항에는 국외로 피신하려는 인파가 물 밀듯 밀려 들었습니다. 평범한 삶을 이어가던 아프간 사람들이 순식간에 폭력과 공포로 가득한 전장 속으로 내던졌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영화보다 더 긴박했던 아프간 엑소더스 장면을 지켜보며, 현대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반문명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 목도하였습니다. 


이륙하는 수송기에서 추락한 두 사람은 16세와 17세의 평범한 아프간 소년들. 카불 시장에서 과일을 팔아 어머니를 부양해 온 형제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800만명의 아프간인들은 차라리 위험천만한 탈출을 선택해야만 하는 극악무도한 공포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보호 받아야 할 약자, 여성들에게 놓인 현실은 칼끝에 선 듯 더없이 위태롭기만 합니다. 


탈레반은 누구인가?

탈레반(Taliban)은 아랍어로 학생들이라는 뜻입니다. 학생을 뜻하는 아랍어 ‘탈립(Talib)’에 파슈툰어의 복수어미 ‘안(an)’이 붙은 형태로, 여기서 ‘학생’은 이슬람을 가르치는 기숙학교 마드라사(madrasa)에서 공부하는 신학생을 가리킵니다. 


왜 신의 가르침을 배우는 신학생들이 이다지도 무자비한 집단이 되었을까요? 시간은 4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당시 미국은 반소련 항쟁을 돕기위해 무자헤딘(전사)를 훈련시키고 지원했습니다. 이때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 지역에서 반소련 전사로 훈련 받던 신학생들이 훗날 탈레반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탈레반은 1994년에 아프가니스탄 남부 중심지 칸다하르에서 조직됐습니다. 이들은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속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의 약 4분의 3을 장악하며 통치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여성 인권이 

  가장 낮은 나라 

탈레반 통치 5년 동안 여성과 소수자(시아파)는 최대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이 기간 아프간 여성들은 교육을 받거나 직업을 구할 수도 없었고, 남성의 보호 없이는 외출할 수 없었으며, 모든 공적인 자리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잔혹한 현실 앞에 여성들은 무자비한 폭력을 속수무책으로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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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경제포럼 보고서 바로가기: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21)

https://www.weforum.org/reports/global-gender-gap-report-2021/digest


2021년 현재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세계 최하위. 얼마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21)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성 평등지수는 156개 국가 중 156위로 꼴찌를 차지했습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1960-70년대의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사회 내에서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했고,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카불 거리를 활보할 정도로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탈레반이 집권하며 여성 인권은 야만적인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미군정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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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통계 연구소 데이터 바로가기: 

‘아프가니스탄의 교육 기관 등록률, 여성(2020년 9월 기준데이터)’ 

https://data.worldbank.org/topic/education?locations=AF


탈레반 집권기 아프간 여성들은 외출이 금지되었고, 교육이 금지되었고, 취업이 금지되었습니다. 

유네스코의 ‘아프가니스탄 교육 기관 등록률, 여성' 그래프를 보면, 탈레반의 집권기(1996년- 2001년) 그래프가 뚝 끊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 기간 여성 교육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의미입니다. 

 

2001년부터는 탈레반이 물러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었기 때문에 그래프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2018년 기준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교육 기관 등록률은 약 83%이었습니다. 


그러나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인해 그래프는 또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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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악’으로 낙인찍은 관습


탈레반은 왜 여성을 탄압할까요? 뿌리는 ‘파슈툰왈리’와 ‘데오반니’, ‘샤리아 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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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슈툰왈리

‘파슈툰왈리(پښتونولي‎, Pashtunwali)’는 탈레반의 주축이 되는 파슈툰족의 오랜 관습으로, 환대, 보호, 명예, 용맹 등 파슈툰족 남성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제시합니다. 탈레반은 파슈툰왈리를 기반으로 이슬람 율법을 해석하는데, 문제는 파슈톤왈리의 여성관이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이며 여성을 사악한 존재로 본다는 것입니다. 슈톤왈리에 근거하면 여성은 철저하게 남성의 소유물이고, 2세생산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2. 데오반디

데오반니는 영국의 식민지배 이후 인도에서 일어난 ‘이슬람 개혁운동’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인도의 인근 국가로서 데오반디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데오반니는 여성을 공적인 공간에서 철저히 배제시킵니다.


3. 샤리아 법

샤리아 법은 기도, 단식, 빈자들을 위한 기부 등 모든 무슬림들이 지켜야 할 삶의 규범입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샤리아법을 해석하게 되면 세계의 그 어떤 법 체계보다도 여성에게 잔혹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샤리아 법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극단적 엄벌주의: 절도를 한 경우 손을 절단하고, 불륜을 저지른 경우 돌로 쳐 죽게 하는 등 고중세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가혹한 신체형이 행해집니다.

- 극단적 성 차별주의: 샤리아법은 여성 및 비무슬림들이 점점 더 불리해지도록 계속해서 개악되어 왔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이 구타 및 성폭력을 당해도 자신이 피해자란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탈레반 치하

참혹했던 여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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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과 탈레반 치하 온몸을 부르카로 가린 여성들


2020년 휴먼라이츠워치 (Human Rights Watch)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 집권기 아프간 여성들에게는 종교, 표현, 교육의 자유에 대한 극단적인 억압과 처형을 포함한 잔혹한 체벌이 행해졌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 바로가기: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교육, 사회제한 및 정의(2020)’

https://www.hrw.org/report/2020/06/30/you-have-no-right-complain/education-social-restrictions-and-justice-taliban-held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교육, 사회제한 및 정의’ 보고서는 탈레반 집권기의 아프간 여성의 탄압을 4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습니다. 


  1. 교육

탈레반 집권 이후 8세 이상 소녀들의 교육을 금지는 법령이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카불에서만 소녀 10만 6256명, 여대생 8000명이 퇴학당하고 63개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원하는 여성들은 비밀리에 지하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고, 발각되면 사형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공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2. 고용

1996년 9월 30일 탈레반은 모든 여성의 고용을 금지했습니다. 여성 보건종사자는 취업금지를 면제받았지만, 카불의 물랄라이 병원에서는 200여명의 여직원 중 50명의 여직원만이 남게 되었고 카불의 학교에서도 여교사 7793명이 파면되었습니다. 직장을 잃은 많은 여성들은 돈을 구걸하러 거리에 나서야 했습니다.


  3. 건

탈레반은 여성이 남성 의사에게 진찰을 받을 때는 완전히 옷을 입게 했습니다. 이는 명확한 진찰과 치료를 방해하였고, 여성의사가 있는 비공식 병원을 가려해도 의약품의 효력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더불어 강제 감금과 사회적 고립은 여성의 정신건강까지도 위협했습니다. 여성 16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97%가 심각한 우울증의 징후를, 71%가 신체 건강의 저하를 보였습니다.


  4. 처벌

샤리아 법에 근거한 처벌은 극단적인 수위의 폭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샤리아법을 어긴 여성들에게는 광장이나 길거리 구타 등 공개적인 처벌이 행해졌습니다.


|탈레반 치하, 여성 처벌 사례


○ 1996년 10월, 한 여성이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했다는 이유로 엄지손가락 끝이 잘렸다.


○ 1999년 카불 가지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7명의 자녀를 둔 엄마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진범으로 알려진 딸 대신에 관중 3만 명 앞에서 처형됐다. 


○ 아파트에서 비공식 학교를 운영하던 여성이 발각되자 아이들을 구타하고 계단 아래로 여성을 던진 뒤 감금했다.  


  탈레반 치하, 여성 억압 제한들


○ 여성은 혈족이나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채 거리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


○ 남자는 여자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여자는 굽이 높은 신발을 신어서는 안 된다.


○ 낯선 사람이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여성은 대중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 모든 지상 및 1층 주거용 창문은 페인트칠을 하거나 차폐를 하여 거리에서 여성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여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모든 장소 이름 수정한다. 예를 들어, ‘여성의 정원’은 ‘봄의 정원’으로 이름을 변경한다.

인간이기 위한 발버둥

여성폭력철폐법

(EVAW)

2001년 탈레반 정권이 축출된 후 아프간에서는 여성의 권리 증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다수의 비정부 기구 및 일부 정부 기관들이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아프간 법률 개혁’을 위해 노력했고, 2008년 8월 여성폭력철폐법(EVAW)의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아프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으로, 강간, 폭행, 강제결혼, 재산취득 금지, 취업 및 교육기회 박탈 등 여성에 대한 22가지 폭력 행위에 대한 처벌을 의무화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 바로가기:

‘아프가니스탄의 여성폭력철폐법 시행(2021)’

https://www.hrw.org/report/2021/08/05/i-thought-our-life-might-get-better/implementing-afghanistans-elimination




한계는 있지만 여성들의 인권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프간 여성들의 뼈아픈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휴먼라이트워치는 여성폭력철폐법(EVAW)에 대해 “느리지만 진정한 변화를 주도했으며, 다른 법을 개혁하려는 아프간 여성 인권 단체의 노력에 대한 옹호적 핀이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여성폭력철폐법(EVAW)은 폐기 처분 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20년 전으로 역행한

아프간 여성 인권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20년만에 다시 정권을 탈환했습니다. 아프간 정부는 저항없이 항복했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해외로 발빠르게 도피했습니다.


재집권한 탈레반은 샤리아 법 내에서 여성 인권을 존중해주겠다고 공언했지만,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 거리에 나선 여성은 탈레반에 무참히 총살당했습니다. 몸에 꽉 끼는 옷을 입고 남자 친척과 동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된 여성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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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면에 붙여진 여성의 얼굴들이 스프레이로 심하게 훼손된 카불의 한 미용실


공포정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프간 여성의 인권을 위한 20년간의 노력은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부르카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탈레반 치하를 경험해보지 못한 2001년 이후 출생 소녀와 여성들은 이런 현실이 낯설고도 공포스럽기만 합니다. 


전 세계는 목숨을 걸고 인권 사수를 위해 거리에 나온 용기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잔인한 방아쇠가 언제든지 이 여성들을 향해 당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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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7일, 탈레반 군인의 앞에서 여성의 인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아프간 여성들


국제사회는 일제히 탈레반을 향해 시민들의 인권 보장을 촉구했습니다. 유엔 인권 사무총장 미셸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는 탈레반 지도자들이 모든 아프가니스탄인의 권리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여성과 소녀에 대해 넘지 말아야 할 “근본적인 레드 라인(fundamental red line)”을 지키라고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돕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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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공포 속에서 신음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2회 선학평화상의 수상자이기도 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교육의 어머니, ‘사키나 야쿠비’ 박사는 전 세계를 향해 절박한 목소리로 아프간에 대한 관심과 구호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은 무너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람 속의 속삭임까지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탈레반은 꿈을 부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


-탈레반 재집권 후 

사키나 야쿠비 박사가 전 세계 협력파트너에게 보낸 편지 중-


사키나 야쿠비 편지 전문 바로가기:

아프가니스탄의 편지 - 발표 - 뉴스 및 인사이트 - 선학 평화상 (sunhakpeaceprize.org)


1990년대 후반 탈레반 치하에서도 목숨을 걸고 소녀들을 위한 지하학교를 운영했던 사키나 야쿠비 박사는 1995년 아프가니스탄 학습연구소(AIL: Afghan Institute of Learning)를 설립하고 1300만 명의 난민에게 교육과 직업훈련을 실시해 이슬람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 향상을 이끈 교육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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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비 박사의 메시지처럼 아프간 사람들이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가려면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도 이상과 신념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기에, 언젠가 아프간은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잔인한 현실에 상처 받은 아프간의 여성과 아이들이 ‘희망의 마음’까지 폐기하지 않도록,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연대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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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을 돕는 방법


아프간학습연구소(AIL)에 기부하기

https://www.paypal.com/donate/?hosted_button_id=U342N8B8RBHPG&ltclid=40ea689c-0b50-44fc-845c-5c69e93a8ba2


https://www.afghaninstituteoflearning.org/how-to-donate.html


유엔 평화유지군 요청

https://peacekeeping.un.org/en/contact


국제 적십자 위원회

https://www.icrc.org/en/cont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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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hak Peace Prize

미래세대는 현세대의 생물학적 자손을 넘어 현세대가 직접 만날 수 없는
미래의 인류 일반을 의미합니다.

현세대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미래세대에게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주기에
우리는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